「그리스인 조르바」, 나를 부수자 내가 되었다

1. 소설 내 그리스의 시대적 배경은 어떠한가?

그리스인은 고대 때부터 현 영토인 발칸반도에 자리를 잡았으며, 터키는 중세 초기에 소아시아에 자리 잡았다. 고대에는 현재 터키의 영역인 소아시아에도 그리스 문명이 번성하였으며, 그리스인이 주요 구성원이었던 동로마제국은 중세까지 건재하였다. 하지만 15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동로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며 동로마제국은 멸망했다. 그리스의 발칸 반도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세기에 이르러 오스만 제국이 흔들리면서 그리스는 독립에 대한 의지를 품는다. 1822년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독립을 선포하였고 이후 ‘그리스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영국, 프랑스 등 오스만 제국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주요 강대국들의 협력에 의해 1829년 그리스는 독립을 이룬다.

니콜라스 카잔차카스(Nikos Kazantzakis, 1883~1957)는 크레타섬 출생으로 터키의 지배, 기독교 박해 및 독립전쟁의 시대상을 문학작품에 반영하고자 노력했으며 그리스 민족시인 호메로스와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의 민족 시인이자 작가이다. 19세기 민족주의, 정복 주의가 활개를 칠 때, 소국 그리스의 풍전등화를 지켜보면서 개인의 삶의 의미를 문학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핵심내용은 <거룩하게되기>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너머에서 일어나는 성화(聖化)를 의미한다.

니콜라스 카잔차카스의 중국, 일본 등을 여행한 기행문에서는 근대화 당시 우리가 몰랐던 변화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19세기는 우리가 4차산업으로 느끼는 감정보다 더욱 생경하였을 것이며 진보/보수 간의 문화/사회적 의견대립도 심했을 것이다.

고려시대 정도전을 추종하던 세력들은 급진적 좌파로 분류되었지만, 후대 조선시대에는 훈구파라는 악명 높은 보수단체로 분류되듯이 영원히 신선한 것은 없다.

소설 곳곳에서 보이는 전통적 가치와 근대적 가치의 대립은 광산개발을 하는 작은 도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확천금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소식에 모든 동네 주민들은 조르바와 주인공을 칭송한다. 교회의 전통, 남녀 간의 정절 등의 가치가 살아있는 동네지만 자본주의의 달콤한 향기에 조금씩 균열이 가는 모습을 보인다.

남유럽의 자본주의는 인간미가 있다. 칼같이 관리하지 않기에 작금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긴 역사의 페이지에선 이것도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겠지만 인생이란 늘 굴곡진 것이라는 대명제를 아마도 남유럽 사람들은 북유럽 사람들보다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2. 혼란의 시대에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목숨을 보전할 것인가?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쓴 채 종이를 씹으면서 얼마나 더 있겠다는 것인가? 왜 나와 함께 가지 않나? 저 멀리 코카서스에, 위험에 처한 수천만 동포가 있는데? 함께 가서 구해주자’ <작품 중>

주인공의 친구는 그리스 독립을 위한 전쟁에 참여하고자 한다. 하지만 끝내 주인공은 함께 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타박을 받는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행동하지 않는 지성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는 늘 유효하다.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과연 전쟁이 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솔직히 참전하고 싶지 않다. 국가를 위한 희생이 내 삶에 어떤 가치를 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전쟁에 참전 중인 친구를 떠나보내며 슬퍼하는 주인공은 나와 비슷한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참전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주인공의 솔직한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은 한없이 작고 나약한 존재다. 시대를 압도하는 이데올로기가 출현하지 않는 이상, 알량한 의협심은 곧 후회를 가져올 뿐이다.

국가, 권력 간의 전쟁은 민초들의 피를 원한다. 그들을 사상적으로 무장시키고 조국에 충성할 것을 요구한다. 태초에 가족을 위한 희생, 부족을 위한 희생은 좀 더 순수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부모, 자식들과 이웃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권력은 흐릿하다. 국가의 정체란 무엇인가? 통치자인가? 아니면 법률과 같은 시스템인가?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통치하고 보호해준다 외치는 허상일 뿐인가? 미국의 군대라면 좀 더 이해가 잘 된다. 희생자에 대한 예우, 현역 군인들에 대한 처우 등이 상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인은 미군에 복무하고 시민권을 얻고 각종 경제적 혜택을 받기도 한다.

참전과 영웅적 행동들은 선, 그 자체라기보다는 명예, 권력에 대한 욕망의 간접적 발현이다.

 

3. 자유인, 이 시대의 자유란 무엇인가?

6시에 기상해서 운동한다. 샤워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9시까지 출근을 한다. 7시에 퇴근하여 집에 와서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20대 초엔 대학 생활을 하고 군대에 가며 20대 후반에 취업한다. 30대 초반에 결혼해서 30대 중반엔 아이를 낳고 40대 초반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파트를 산다. 50대에 회사를 은퇴하고 퇴직금을 알뜰히 모아 자식들 대학 보내고 결혼을 시킨다.

전형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중산층의 삶이다. 하지만 답답하고 새로울 것 없는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새삼스럽게 논한다는 것이 어쩌면 유별난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의미의 ‘자유’를 말해보자. 그것은 사회가 정해놓은 표준편차를 벗어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스티브 잡스, 저커버그 같은 괴짜들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유교적 전통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공허한 구호만 있을 뿐, 튀는 사람이나 사회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

‘무슨 뜻이냐 하면, 임금이니, 민족주의니, 국민투표니, 국회의원이니 해봐야 다 그게 그거니까 하는 소리요’ <작품 중>

조르바는 시스템이 자유에 필연적으로 방해가 됨을 직감하고 있었다. 시스템은 민초의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인류에게 생소하다. 20세기에 들어와 북유럽에서부터 퍼져나온 것이지만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여전히 시스템은 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범인(凡人)들을 제어한다.

조르바는 야성적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이성의 호감을 얻기 위해, 그리고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한다. 사실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저마다의 비전과 명분을 앞세워 속내를 감춘다.

조르바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입으로 내뱉는다.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형이상학적인 생각들에 대해서는 몸짓으로 노래로 배설하듯이 모든 것을 쏟아낸다. 모든 것을 쏟아내기에, 그리고 원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여한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조르바에게 자살이란 없다. 마치 동물이 자살하지 않는 것처럼.

자살은 사회적 속박에 대한 극단적 회피이다. 절제의 미덕보다는 배설의 자유를 조금은 허락할 수 있는 유연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4. 지식인의 한계, 필드에서 몸으로 체득하는 경험이 더 가치있는 것일까?

‘내게는 지금 리비아에 면한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를 빌려 둔 게 있었다. 나는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작품 중>

친구의 참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주인공은 책벌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평안한 삶을 뒤로하고 사업가로서의 리스크를 안고 일종의 모험을 떠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불편한 법. 주인공은 기존 삶의 패턴과 가치관은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가 보여주는 가치관과 대립한다. 주인공은 이 대립으로 지속적인   심적 갈등을 겪는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직장인들은 여전히 열심히 공부한다. 제2외국어, IT, 재무, MBA 학위 등 첨단의 지식노동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먹이사슬 내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지식노동자를 잘 부릴 수 있는 경제적 포식자, 어쩌면 필드에서 몸으로 부딪혀 익혀낸 사람일 수도 있겠다. 크던, 작던 기업체를 운영하는 오너는 리스크를 온전히 스스로 감내한다. 투자의 결정, 직원의 채용과 해고, 자원의 배치 등은 이론만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현장에서 긴 시간 숙성되며 쌓은 감각은 암묵지(暗默知,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의 형태로 경영자의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인다.

현장의 지식과 학문적 지식의 조화는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학문의 범위를 좁혀 실무에 적용하고 현장의 경험들을 오롯이 정리하여 구조화하는 작업들이 꾸준히 이루어질 때,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다.

조르바와 주인공은 필드 경험과 학문적 지식의 극단에 서 있다. 주인공에게 책이란 일종의 도피처 같은 것이다. 책에는 모든 선인의 경험, 실패, 그리고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 녹아 들어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르바는 책 따위 모두 불살라 버리라고 외친다. 책을 쓰는 행위란 언제나 진실보다는 과장/미화가 따라붙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오해와 왜곡이 있을 거라는 짐작에서 나온 외침일 것이다.

책을 읽는 것보다는 하나의 의식적 행동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하지만 책보다 피드백은 빠를 수 있다. 시행착오가 주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감내할 수만 있다면 조르바처럼 몸뚱이 하나로 세상에 맞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수십 년을 문자를 신봉하며 살아온 내겐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5. 조르바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조르바는 신의가 없는 사람이다. 주인공을 배신하고 사업체를 말아먹고 도망친다. 하지만 악인이라 수는 없다. 그는 사람을 해치거나 겁박하거나 괴롭히지는 않았다.

책은 주인공을 기득권 세력으로, 조르바를 서민 혹은 피해자라고 설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 정도의 일탈은 사회가 보듬어 줄 것이라 자위한다.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갖게 할 수는 없다. 조르바의 배신은 일종의 세금이다. 1급수의 물이 늘 좋은 것은 아니듯, 적당히 혼탁한 사회가 인간미 있다. 이는 그리스와 같은 남유럽 사회에 대한 이미지와 겹친다. 독일과 같은 북유럽 사회에서 이런 인간상이 긍정적으로 비추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나쁘지만 밉지 않은 조르바 덕분에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신의도 있으며, 젠틀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비교 우위를 통해 스스로를 자위할 수 있게 된다.

‘종신형을 살기 위해 어두운 감옥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악마와 지옥의 불길과 피투성이 젖가슴을 한 매춘부 아니면 뿔이 달린 지옥의 괴물 그림이 벽면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겁을 주자는 교회의 갈망이 그대로 투영된 묵시록적 협박,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일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토스산 순례기 中>

작가는 당대의 보편적 ‘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구원의 길을 깨닫기 위해 수도승들이 기거하는 아토스산에 올라 묻고 토론했다. 하지만 고통과 억압으로 얼룩진 수도승들의 삶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얼마나 인간을 힘들게 하는지, 행복의 감각을 제어하는지 알게 된다.

무릇 이런 시도는 불경한 것이고 패륜적인 것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진보의 시작은 사소한 반항과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는 여행과 사색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적인 사회적 반항을 시도한다. 종교에 대해, 피지배자인 터키에 대해, 구시대적 관습에 대해.

저자는 조르바를 통해 ‘선’의 개념에 반기를 들지만, 그 역시도 인간의 나약함을 억제하고 삶의 의지를 훈련시키는 것이 종교나 사회적 교육 시스템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진보주의자는 없다. 책을 읽으며, 학교를 다니며, 기득권자들과 교류하면서 정반합의 사상이 형성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조화, 절대로 어울리기 힘들 것 같은 두 가치의 적절한 조합을 작가는 꿈꾸고 있다. 악이라는 개념이 있기에 선의 개념이 있을 수 있고, 또 돋보이는 것처럼,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가치를 규정하지 않는, 좀 더 자비로운 세상. 관용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를 읽는 시간이었다.

 

라이터스 _ SK네트웍스 정종원 매니저
행복하려거든 장인이 되라고 한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 그 무아지경에서
모든 세상살이 잡념은 사라지고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된다.
음악가, 소설가, 화가, 시인만이 Artist가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업’으로 ‘생활’ 그 자체로 우린 모두 Artist다.
두바이지사 정종원 입니다.